미래를 향한 아주 오래된 길
백발투사 백기완 선생의 뉴스공장 인터뷰 녹취 2019년 3월 20일(수) 본문
백발투사 백기완 선생의 뉴스공장 출연 2019년 3월 20일(수)
방송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JapeSalsIA8
민주와 통일 투사, 버선발 이야기 - 백기완
오프닝: ♬ 임을 위한 행진곡 ♬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데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앞서서 가나니 산 자여 따르라
앞서서 가나니 산 자여 따르라
김어준: 이 노래는 이 분이 시 '묏비나리'의 한 부분을 차용해서 만들어진 노래입니다. 이 분을 어떤 말로 소개해야 할까요? 시인, 정치가, 통일운동가, 대통령 후보. 이 분을 소개할 말은 정말 많은데, 개인적으로는 풍운아, 혁명가, 한국의 체게바라 이렇게 제 머리에 입력된 분입니다. 오늘은 소설가로 이 분을 모셨습니다. 백기완 선생님 나오셨습니다.
백기완 선생: 안녕하세요.
김어준: 잘 들리십니까?
백기완 선생: 네.
김어준: 귀가 지금 잘 안 들리신다고 해서, 제가 가장 최근에 접한 소식이 지난 탄핵 정국에서 촛불집회 다 참여하셨고 그러다가 몸이 상하셔서 작년에 대수술을 하셨다고 들었는데 건강은 어떠십니까?
백기완 선생: 그저 건강은 따로 없고요, 이미 세상 살다보니까 나는 그저 죽기 아니면 살기요.
김어준: (웃음) 네, 건강 뭐 따로 없고, 죽기 아니면 살기. (웃음) 잘 모르시겠지만 저는 사실 선생님의 연설을 듣고 자란 세대예요. 대단한 연설가시거든요. 그런 이야기 많이 들으셨죠?
백기완 선생: (웃음)
김어준: 그래서 제가 오늘 컷을 몇 가지 준비했는데. 제가 대통령 후보라고 소개해서 2, 30대는 모를 수 있기 때문에, 87년, 92년에 대통령 출마하셨습니다, 그죠?
백기완 선생: 네.
김어준: 득표는 많이 못하셨죠?
백기완 선생: 네?
김어준: 득표는 많이 못하셨죠?
백기완 선생: 허허.
김어준: 그리고 87년에 나오셔서 이런 연설을 대학로에서 하셨어요. 동승동에서. 저도 기억하는데, '김대중, 김영삼 두 사람은 나랑 단일화하자' 이런 제안하셨죠.
백기완 선생: (끄덕)
김어준: 고개만 끄덕하시면 안 되고 말씀해 주셔야 합니다.
백기완 선생: 그때 그 두 김씨가 내 말 듣고 한 사람은 물러갔어야 되는 거야.
김어준: 그렇죠.
백기완 선생: 그런데 둘이서 서로 대통령을 해먹겠다고 하다가 그 살인마 원흉 노태우한테 뺏겼잖아요.
김어준: (웃음) 선생님 말씀을 안 들어가지고, 그죠? 그렇게 제안하셨었어요 그때. 그리고 92년에는 실제 출마까지 이어져서 그때 몇 표 얻으셨죠? 기억나십니까?
백기완 선생: 그때 난 표 얻자고 나온 게 아니고, 이 세상이 바뀌려고 그러면 민중이 나서야 된다. 그 민중이 나서라고 해서 내가 얼굴만 빌려줬던 거예요.
김어준: 그때도 대단했었는데, 지금 2, 30대는 모르겠지만 당시 대학생들에게 또는 당시 2, 30대 젊은 세대들에게는, 또 나이 드신 분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전설적인 존재였습니다. 당시 MBC 뉴스가 선생님 출마 당시 보도한 게 있어요. 저희가 잠시 틀어보겠습니다.
-MBC 보도 방송-
앵커: 무소속의 백기완 후보는 오늘 서울 동승동 대학로에서 대규모 유세를 갖고 야권 후보의 단일화를 제의했습니다.
기자: 무소속의 백기완 후보는 오늘 동승동 대학로에서 군정 종식 및 민주 연립정부 쟁취를 위한 국민 결의대회 겸 유세를 갖고, 야권후보 단일화를 위해 자신과 두 김 씨를 포함한 3자 정치회담을 갖자고 공식 제의했습니다.
김어준: 이 앵커 목소리 기억나십니까?
백기완 선생: 네.
김어준: 누군지 아시겠습니까?
백기완 선생: 잘 모르겠는데요.
김어준: (웃음) 이 앵커 목소리의 주인공이 손석희 사장입니다.
백기완 선생: 아, 손석희? 오...
김어준: (웃음) 당시 화면을 보면 정말 앳된 모습인데, 지금 손석희 사장이 어디 사장인지 아십니까?
백기완 선생: 그 어디 방송국 사장이라고 그러던데?
김어준: (웃음) 맞습니다. 무슨 방송국 사장인데. (웃음) 저희가 모르실 줄 알고 손석희 사장 이야기가 나와서, 지난 촛불집회 때 손석희 이름을 언급하신 적이 있어요. 저희가 그 컷을 준비했는데, 가두연설하시면서, 촛불집회 때. 잠깐 들어보겠습니다.
백기완 육성: "중앙일보에서 하는 손석희라고 하는 젊은이가 앞장서서 박근혜의 죄상을 폭로하지 않았습니까? (군중: 네!)그래서 만 천하가 다 알아. 그리고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을 발의를 시켰으면 대통령 자격이 법률적으로 없는거야. (군중: 맞습니다!)
(백기완 선생 명연설 청와대 앞 촛불집회 현장. 2016년 12월 24일(토) https://www.youtube.com/watch?v=IDDTAKtWSzo)
김어준: 이거 기억하시죠?
백기완 선생: (끄덕)
김어준: 고개를 끄덕거리고 계시네요. 제가 중계를 해야겠습니다. 손석희 사장이 이제 젊은이가 아닙니다, 선생님. (웃음) 작년인가요, 환갑됐습니다. 손석희 젊은이 아닙니다. 다 컸습어요 이제.
백기완 선생: 그래요?
김어준: 그래요? (박수, 웃음) 제가 목소리를 자꾸 들려드리는 게 선생님 연설이 기백이 넘치기로 진짜 유명했거든요. 2002년에 히딩크 감독 만나셨잖아요. 그때 월드컵 멤버들 앞에서 강연을 하셨고, 그 강연 장면을 보고 히딩크가 뭐라고 했냐면 '진짜 한국 사람을 만났다' 그렇게 얘기를 했어요. 선생님이 어떤 식으로 연설을 하시는지, 연설톤을 한 번 들어보시겠습니다.
백기완 육성:
"이거봐, 이명박이!
나 백기완이야! 나 알잖아!
내 말 좀 들어.
북쪽에 갔다 온한상렬 목사 잡아갈 생각하지 말어."
김어준: 다시 한 번 들려주세요. 처음부터. 크게. 잘 안 들리는데.
백기완 육성:
"이거봐, 이명박이!
나 백기완이야! 나 알잖아!
내 말 좀 들어.
북쪽에 갔다 온한상렬 목사 잡아갈 생각하지 말어.
(분단이라는 게 뭐야?
분단이라는 게 뭐야?
높은 자리에 앉았으면 그걸 꼭 알아야 돼.
분단이 뭐야?
우리가 분단 해달라 그랬어?
그런 사람 하나도 없어.
그런데 우리나라 허리를 뚝 잘랐어.
이건 뭐냐 이 말이야.
그것은 침략이야.
미국놈들의 침략이다 이 말이야.
그 침략선을 조금 넘어서 북쪽에서 남쪽으로, 남쪽에서 북쪽으로 왔다갔다 하기로서니 뭘 잡아넣겠다고!
그건 우리나라의 허리를 뚝 자른 미국의 침략을 정당화해주는 역사적인 범죄라고 하는 깨우침이 있어야 된다 이 말이야! (박수))
-2010년 북측을 방문하고 돌아올 한상렬 목사를 구속시키지 말라는 백기완 선생의 부탁-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A4Zd6wIVE-4
김어준: 네, 연설이 거의 호통인데, 이런 톤으로 연설을 하십니다. 내용은 이겁니다. '이명박이!' 이렇게 호통을 치시면서 한상렬 목사가 2010년에 징역 3년 받았죠, 방북했다가. 한상렬 목사를 풀어주라고, 당시에 이명박 대통령이 현직에 있을 때 '이명박이! 풀어줘!' 이렇게 호통을 치신. 이런 식으로 연설을 하십니다. 못 들으신 분들은 짐작하시라고. 기억나십니까, 이거 다?
백기완 선생: 조금 기억이 나요.
김어준: 조금 기억이 나요. (웃음) 연설 톤이 이런 식이거든요. 호통도 치시고, 대화톤으로 얘기하시고. 자, 조금 더 젊었을 때 히딩크 감독이 존경한다고. 한국을 떠나면서 백기완 선생을 존경한다는 편지를 선생님한테 남기고 갔어요. 그러자 방송가에서 선생님을 찾아갑니다. 이런 편지를 남기고 갔다고. 그때 선생님이 하신 답변이 이겁니다.
백기완 육성: "진짜 히딩크 얘기를 나 나름으로 하나 꼬집어서 말하고 싶소. 히딩크는 사나이요."
김어준: (웃음) 선생님의 화법인데, 제가 그 당시에 듣고 빵 터졌건 기억이 나는데 (웃음) 히딩크 감독이라고 해서 길게 얘기할 줄 알았는데 '히딩크는 사나이요' 이렇게 한 마디 하셨어요. (웃음) 제가 이걸 뽑은 이유가 또 있습니다. 제 기억이 하도 많아서 여러가지 들려드렸는데. 젊은 시절에 축구하셨다면서요?
백기완 선생: 축구를 좋아했죠.
김어준: 직접 하신 건 아닙니까?
백기완 선생: 내가 뭘 시골놈인데, 공이 있어야 축구를 하죠. (웃음) 새끼를 둘둘 만 거 맨발로 차고 그래서 발톱이 다 빠져나가고 그랬어요.
김어준: 아, 축구를 좋아하셨다는 이야기를 축구를 하셨다는 이야기로 들었군요.
백기완 선생: 그게 그거죠 뭐.
김어준: 제가 분명히 어디서 축구를 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어가지고. 축구를 직접 하시지는 못하고 좋아하셨다.
백기완 선생: 그럼요.
김어준: 평상시에 궁금한 건데 제가 또 여쭤보겠습니다. 선생님 조부는 독립운동을 하셨고, 그때 자료를 찾아보면 굉장히 부자셨어요. 부친은 언론인이셨고. 당대 엘리트였던데 보니까. 그런데 선생님은 왜 공부를 초등학교까지만 하셨습니까?
백기완 선생: 내가 태어났을 때는 우리 집안이 다 풍비박산이 나서 끼니가 간 데 없었어요.
김어준: 조부가 독립운동했던 게 들켰나보죠?
백기완 선생: 그 여파죠.
김어준: 초등학교 중퇴하셨죠?
백기완 선생: 초등학교를 다니다 말다 그러다가 8.15 해방 덕으로 졸업장은 얻었어 그래도. 내 유일한 졸업장이야.
김어준: 그리고 나선 독학을 하셨어요 다.
백기완 선생: 그럼.
김어준: 독학을 하셨고, 장준하 선생님이 이런 말을 하셨습니다. 백기완 이 친구는 건드리지 말라고. 이 사람이 죽으면 민족문화, 민중예술 보고가 사라진다. 장준하 선생님이 이런 말 하신 거 맞죠?
백기완 선생: 거 내가 중앙정보부에 가서 곤혹을 치를 때요. 장준하 선생님이 백기완에 대해서 더이상 손을 대지 마라. 나는 저쪽 방에서 매를 맞고 있고, 정준하 선생이 이쪽 방에서 조사를 받고 있는데, 장준하 선생이 일주일 동안 조사를 안 받는거야. 막 항의하니까 때릴 수도 없고, 독립군을. 박정희가 그때 높은 자리에 있었는데, 박정희는 일본군 중위야. 우리 장준하 선생은 독립군 대위라고. 일본군 중위가 독립군 대위를 때릴 순 없잖아, 잡아올 순 있었어도. 그래서 패를 걸었는데 뭐라고 걸었느냐. '백기완 선생은 더이상 패지 마라. 고집이 세서 죽어도 잘못했단 말 안하고 매맞아 죽을거다. 그런데 그 양반이 죽으면 이 나라의 민족문화, 민중예술이 죽는다. 그 민중예술, 민족문화의 보고다.' 그렇게 말씀을 하셨죠.
김어준: 저도 그렇게 들었습니다. 실제로 그런 말씀을 하셨군요. 그래서 선생님이 이제, 예를 들어서 우리가 아는 '새내기', '동아리' 이런 거 다 선생님이 처음에 시작하신 우리말 운동으로 정작된 거예요. 모르시는 분들 많을텐데. 지금 대학가에서는 아예 정착됐죠.
백기완 선생: 새내기라는 말도 내가 입안화시켰고 뭐 색두기, 여러 개 많아요.
김어준: 모꼬지, 달동네, 이런 거. 지금은 자연스러운데 '엠티' 이런 식으로 썼었죠. 지금은 다 동아리라고 하고, 모꼬지도 많이 쓰고. 새내기, 신입생들을 새내기라고 부른 거. 이거 다 선생님이 시작하신 거예요. 자 이런 분입니다. 이런 분인데. 소설을 쓰셨어요. 이제 소설 얘기를 해볼게요. 소설 때문에 모셨는데. 『버선발 이야기』라고. 10년에 걸쳐 쓰셨다고. 왜 소설을 쓰신 겁니까?
'버선발 이야기' - 한 권의 책에 담은 팔십 평생 가슴에 품어온 이야기.
백기완 선생: 거, 소설이 아니고, 민중의 삶이요. 민중을 우리말로 '니나'라고 그러는데.
김어준: '니나'요?
백기완 선생: 니나노, 닐리리야 닐리리야. 그게 '니나'예요. 그게 '민중'이라는 말이오.
김어준: 아..
백기완 선생: 근데 '니나'라는 말을 아무리 내가 입안화시키려고 해도 이 방송국에서부터 받아주질 않아.
김어준: '니나'가 민중...
백기완 선생: 암튼, '니나'가 역사의 주인공인데 니나의 이야기를 가지고서 니나의 삶과 문화와 그들의 꿈, 희망을 기록해놔야겠다 해서.
김어준: 아, 그걸 소설 형식을 빌렸을 뿐이지.
백기완 선생: 그럼.
김어준: 그게 작년에 수술 받으셨을 때, 수술 들어가기 전에 '내가 깨어나서 꼭 이 소설을 완성할거야'라고 하시고 수술 들어가셨다고. 10시간에 걸친 대수술을 하셨다고 들었는데, 이걸 왜 꼭 완성했어야 하는 겁니까?
백기완 선생: 심장을 떼서 9시간 반 이상을 수술을 했대요, 내가. 그러니까 정신이 없는거지. 수슬하러 들어갈 때도 난 즉시 나올거다. 어떻게든 살아서 '버선발 이야기' 하나만은 완성을 하고 죽을거다. 그랬죠.
김어준: 그래서 실제로 일어나셨고, 일어나자마자 버선발 그거 원고 완성해야된다고 하셨다면서요.
백기완 선생: 원고지 가져오라고 그래서 거기서 기록을 하면.
김어준: 손으로 집필을 하신 겁니까?
백기완 선생: 하면은 애들이 뺏기도 하고.
김어준: 아..
백기완 선생: 그랬죠.
김어준: 손으로 다 원고지에 쓰신 거예요?
백기완 선생: 그럼.
김어준: 선생님, 노트북이라는 게 있거든요. (웃음) 그렇게 수술을 끝나자마자 다시 집필을 하셔가지고 탈고하신 게 '버선발 이야기'입니다. 내용이 뭡니까?
백기완 선생: '버선발'이라는 건 '발을 벗었다' 이 말이오. 맨발이라 이 말이에요.
김어준: 아, 버선을 신었다는 얘기가 아니에요?
백기완 선생: 버선 발. 벗었다는 말이야.
김어준: 아, 벗었다. 벗은 발.
백기완 선생: 어.
김어준: 그래서 '버선발'로 뛰어나온다고 하는 거군요?
백기완 선생: 우리말은 말이 있어도 글은 없었잖아요. 글 생긴지가 한 400년 밖에 안 됐으니까. 그러니까 '버선발' 그러면 '벗은 발', '맨발'이라 이 말이야.
김어준: 아, 맨발. 민중의 삶을 맨발에 비유하신 거군요.
백기완 선생: 내가 어렸을 적만 해도 첫눈이 내릴 때까지 신발이라는 걸 안 신고 맨발로 살았어요.
김어준: 아..
백기완 선생: 내가 어렸을 적만 해도. 그런데 요새 뭐 고무도 많이 나오고, 가죽도 많이 나와서, 신발이 좀 있지.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전부 다 맨발로 살았어. 성 씨도 없어. 성 씨. 아니 지금은 유명한 언론인이 되시니까 이름도 있고 성도 있겠지만, 옛날에는 성이라는 게 없었어. 이 머슴 놈들은.
김어준: 아하.. 머슴이야기입니다, 이게. 제가 사실은 출판사에서 책을 안 줘서 읽어보지는 못했구요, 머슴의 아들 '버선발'이 역경을 딛고 땅을 모두에게 나눠준다는 얘기예요. 역경을 딛고 성공한다는 얘기가 아니라. 땅을 모두에게 나눠준다. 니꺼 내꺼 없는 세상. 선생님이 항상 이런 얘기 하신 건데. 이런 얘기를 소설의 형식을 빌려서 10년 동안 집필하신 내용입니다. 네. 문자 많이 옵니다. 예. '뉴스공장 듣다가 눈물도 나네요' 이런. 선생님을 기억하는 4, 50대 많거든요. 잘 모르시겠지만, 전설적인 인물이셨어요 사실. 2, 30대는 잘 모르겠지만, 그 세대에게는 대단한 분입니다. 최근 얘기도, 아.. 시간이 부족하네. 한 번 더 모셔야 될 것 같은데, 여기까지만 일단 하겠습니다 오늘. 최근 얘기도 잠깐 해보자면, 수술 직전에 남긴 영상이 하나 있습니다.
백기완 육성: "요즘 문재인 정부가 한반도 문제에 관해서 다가서는 태도, 방법, 이런 걸 다 환영하고 싶습니다. 생각대로 잘 되시길 바랍니다. 그러나 한마디 보태주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한반도 문제의 평화적 타결을 위한 노력이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의 삶의 역사에 주체적인 줄기였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바로 이 땅의 민중들이 주도했던 한반도 평화운동의 그 맥락 위에 서있다는 깨우침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지난 촛불혁명이 뭐요? 한반도의 참된 평화요, 민주요, 자주통일, 민중이 주도하는 해방통일이었습니다. 그 맥락 위에 서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문재인 정부, 민중적인 자부심과 민중적인 배짱을 갖고 소신대로 한번 해보시오!" (2018년 4월 23일 서울 혜화동 서울대학병원에서 심장수술을 받은 백기완(86) 통일문제연구소 소장. 백 소장은 수술대에 오르기 전 문재인 정부에 당부의 메시지를 남겼다. 백기완 선생의 당부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TbxL570W46s)
김어준: 수술 직전에 이제 녹음하신 영상인데, 수술 직전에 어쩌면 마지막 메시지가 될 지도 모른다고 녹음 하신 게 남북관계 잘 해결해라 이런 말씀이셨어요. 평생 통일운동 하셨으니까, 당연히. 그런데 최근에 북미가 별로잖아요. 교착상태라고들 하는데, 이거 어떻게 해야 돌파됩니까, 선생님이 보시기에.
백기완 선생: 이게 방송에 나가는 거예요, 지금 이게?
김어준: 나가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백기완 선생: 그러면 내가 마음 놓고 하겠어. 방송에 꼭 나가야 돼.
김어준: 네.
백기완 선생: 남쪽의 높은 사람하고, 북쪽의 높은 사람이, 두 분이 만나는데 만난다 하면 무엇을 얘기했어야 됐느냐. 미국한테 사과를 요구해야 되는 거요.
김어준: 사과를 먼저 얘기해야 한다.
백기완 선생: 우리나라의 허리를 뚝 자른 게 누구요? 미국 아니요? 우리나라의 비극을 강요한 것이 미국이니까 미국의 그 높은 사람이 먼저 앞장서서 우리 민족한테, 아니 전 세계 인류한테 사과를 하라고 남쪽과 북쪽의 두 높은 사람이 했어야 되는 거야. 그거 안 하고 껴안고 웃기만 하더라고.
김어준: 그것부터 먼저 했었어야 된다.
백기완 선생: 내가 보기에는 할 얘기를 기피한 거요, 두 사람이. 이제라도 늦지 않았어. 둘이서 만나면 미국의 트럼프한테 한반도 분단의 책임을 물으면서 사과하라고 요구를 해야되는 겁니다.
김어준: 알겠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백기완 선생: 나는 미국을 싫어하니까.
김어준: (웃음)
백기완 선생: 대통령도 싫어하지 뭐.
김어준: (웃음) 네 알겠습니다. (웃음) 선생님, 정정하신 한 자주는 아니어도 가끔 한 번씩 모시고 얘기를 들어야되겠다는 생각을 인터뷰하면서 느꼈는데, 사실은 이게 책 얘기하러 모셨는데. 책 얘기 조금만 더하고 제가 오늘은 끝내야 될 것 같습니다. (웃음) '버선발 이야기'라는 책이 출판됐습니다. 선생님이 10년 동안 집필하셨구요, 머슴의 아들이 역경을 딛고 땅을, 저항 안에서 높은 사람이 된다는 얘기가 아니라 저항 안에서 땅을 다 나눠준다는 얘깁니다. 여기에는.. 시간이 다 됐네요. 한 번 더 모시겠습니다. 선생님. 오늘 감사합니다.
전설. 네, 전설이죠. 백기완 선생님이었습니다. 한 번 더 모시겠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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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2월 15일(월) 백기완 선생 별세
2021년 2월 16일(화) 김어준 생각: news-pro.tistory.com/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