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김어준 생각/2017년 5월 (23)
미래를 향한 아주 오래된 길
안녕하세요, 김어준입니다. 지난 주 NATO G7 정상회담 후 독일의 메르켈 총리는 대단히 의미심장한 발언을 했습니다. "다른 누군가에 의지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난 것 같다. 유럽인의 운명은 우리 손으로 챙겨야 한다. 미국과 관계를 지속하면서 러시아와도 더 좋은 이웃으로 지내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NATO 유럽회원국의 방위비 분담금 인상을 요구하고 파리기후협약에도 부정적 태도를 보인 직후에 나온 말입니다. 세계 2차 대전 이후 러시아와 적대했던 서유럽은 미국과 독일의 동맹을 축으로 거대 군사력의 러시아를 견제해왔습니다. 그러나 이제 트럼프식 미국우선주의가 대서양 양쪽의 군사 외교 관계를 재편하고 있는 겁니다. 메르켈의 반응은 고스란히 우리의 사정이 될 수도 있습니다. '다른 누군가에 의지할 수 있는..
안녕하세요, 김어준입니다. 소위 '문자폭탄'이라 불리는 문자 항의에 대해 고소, 고발 이야기가 정치권에서 나옵니다. 작년 촛불부터 탄핵, 파면, 대선을 거치는 7개월여 기간은 시민들이 자신의 정치적 권리를 확인해가는 과정이기도 했습니다. 우리 케이스 이전에 어떤 폭력 행위도 없이 합법적으로 정권과 그 지지기반을 근본부터 무너뜨린 사례는 지난 100여 년간 1989년 체코슬로바키아의 벨벳혁명이 유일했습니다. 벨벳혁명은 구소련 몰락이라는 선행사건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우리 사례가 지난 100여 년간 사실상 유일한 경우입니다. 이 과정을 겪으며 시민들은 때로 촛불을 들고, 때로 글을 쓰고 전파하고 공유하며 자신의 정치적 권리를 쓰는 법 또한 스스로 학습했습니다. 문자 항의 역시 그렇게 스스로..
안녕하세요, 김어준입니다. 정의당 김종대 의원이 군형법 개정안을 발의했습니다. 92조 6항 동성애 관련 조항 때문입니다. 현행 군형법은 영내가 아니라 사적 공간에서 합의된 관계도 처벌합니다. 김 의원은 이를 성적 자기결정권과 사생활 자유의 침해라고 지적합니다. UN에서도 이 조항은 이미 두 차례 폐지 권고를 한 바 있죠. 그런데 이 개정안 때문에 김 의원 사무실은 엄청난 항의를 받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는 흔히 '동성애자를 반대한다'는 표현을 씁니다. 이 표현이 왜 문제가 되느냐? 존재를 반대할 수는 없는 거죠. 빨간색을 반대한다. 말이 안 되죠. 마찬가지 이유로 흑인을 반대할 수 없습니다. 흑인을 싫어한다는 표현만 가능한 거죠. 생각해 보면 실제로는 그렇게 싫어하는 걸 반대한다고 표현하는 겁니다. 왜 ..
안녕하세요, 김어준입니다. 오늘부로 미일중러 4개국 특사들이 모두 귀국했습니다. 이들 4개국 관련해서는 4개국 모두 관련됐을 뿐만 아니라 국내 정치적으로도 정당별 입장이 갈리는 사드배치 문제가 향후 가장 민감한 이슈 중 하나가 될 겁니다. 과연 이 무기의 성능은 미군이 그리고 박근혜 정부 하의 국방부가 주장하듯 그렇게 뛰어난 게 맞긴 맞는지부터 비용 문제는 어떻게 해결하고, 국회 비준은 어떻게 할 것이며, 중국과의 군사외교적 긴장고조와 경제적 손실을 감수할 만큼 안보 이득이 과연 있는 건지까지 여러 검토가 필요할 겁니다. 저는 이 문제 자체보다 국민들이 이 무기 도입으로 인해 우리가 어떤 이득을 얻고 대신 어떤 댓가를 지불해야 하는지 정확하게 아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런 판단의 근거가 충분히..
안녕하세요, 김어준입니다. 그저께 군사분계선을 넘나들어 군이 기관총 사격을 가했던 괴비행체는 풍선으로 밝혀졌습니다. 어제는 외교안보특보 내정자인 문정인 교수가 5,24조치, 그러니까 천안함 이후 방북 불허, 교역 중단 등 전면적인 대북 제재를 이제는 전향적으로 풀어가야 한다는 발언으로 보수 진영의 집중 공격을 받았습니다. 지난 10년간 보수 정권 하에서 북한 뉴스는 항상 부정적이었고, 지금도 풍선에 기관총을 쏠 정도입니다. 북한은 한반도에서 가장 큰 불확실성이죠. 인간은 불확실성을 두려워합니다. 원시인류 때부터 수풀 속에서 뭐가 튀어나올지 모르면 두려워했습니다. 본성이죠. 이 두려움의 감정을 가장 손쉽게 처리하는 방식이 그 불확실성을 악으로 규정하는 겁니다. 공포스러운 대상을 윤리적 단죄의 대상으로 바꾸..
안녕하세요, 김어준입니다. 어제 괴비행체가 군사분계선을 넘나들었다고 합니다. 지난 10여 년간 북한 소식은 모두 부정적인 뉴스였습니다. 세계 유일 분단국가가 통일되어야 한다는 생각 그 자체가 과거보다 많이 약해졌습니다. 이제 각자 체제 유지하며 이 상태를 그냥 유지해야 한다 하는 말들도 많이 합니다.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파리, 북경, 서울. 물리적으로 다 같은 땅 위에 있죠. 서울에서 파리까지 운전해 가는 게 가능은 합니다. 하지만 우리 머릿 속에서는 그 땅은 끊어져 있습니다. 머릿 속에서 땅이 끊어진 덕분에 우리 머릿 속에서 세계는 우리와 떨어져 있고, 세계는 저 멀리 바깥에 있죠. 그렇게 나와 세계는 연결돼 있지 않습니다. 물리적 조건은 정신을 한계 짓습니다. 태평양 섬 원주민들이 처음 보는 백인..
안녕하세요, 김어준입니다. 오늘은 노무현 8주기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싫어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그분들은 여전히 그 죽음을 애달파하는 사람들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럴 수 있죠. 이해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8주기 되는 날이니 그렇게 슬퍼하는 사람들을 한 번쯤 이해해보려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겁니다. 그건 이런 겁니다. 그 사람들에게 노무현은 내가 어린 시절 배운 아주 단순하고 순진한 정의, 우리 편은 이기고 나쁜 놈은 진다는 수준의 나는 나이 먹어가며 반드시 그런 건 아니라는 걸 어쩔 수 없이 받아들였지만 그래도 여전히 그런 게 있다고 믿고 싶은 그런 정의의 원형질이 사람으로 체화된 상징입니다. 그래서 노무현의 죽음은 아직도 내 안의 어딘가에서 살아있던, 그런 단순한 정의를 믿고 ..
안녕하세요, 김어준입니다. '2017년 5월 15일 주가는 1000 밑으로 주저 앉고, 원화는 달러당 2000을 훌쩍 넘고 사람들은 대북폭격설 때문에 생수, 라면 사재기를 한다. 트럼프는 어떤 식으로든 북한을 때린다. 문재인이 되면 통보 없이 때리고, 안철수가 되면 통보하고 때리고, 홍준표가 되면 상의하고 때린다. 그리고 취임 1주일이 지나도록 트럼프 축하전화는 없다.' 지난 4월 13일 한 언론사 칼럼 내용입니다. 문재인 당선시 한반도에 닥칠 위기를 가상으로 그리며 이번 선거에 국가 존망이 걸려 있으니 투표 잘하자는 내용입니다. 한마디로 문재인은 안 된다는 거죠. 실제 벌어진 일은 우리 모두 알고 있습니다. 지난 주 홍석현 대미특사가 만난 미 틸러슨 국무장관은 대북 군사행동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