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김어준 생각/2017년 9월 (21)
미래를 향한 아주 오래된 길
안녕하세요, 김어준입니다. 강원 강릉 화재사고로 소방관 두 명이 생명을 잃자, 소방관들의 처우 개선이 필요하다는 기사가 주목을 받습니다. 이런 기사들은 매우 당연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씁쓸합니다. 지난 추경 당시 소방관 충원을 위한 예산안을 야당이 반대할 때 보수 매체는 공무원 늘이기라고 비판했고, 소수의 진보 매체는 야당 역시 소방관 충원을 대선에서 공약하지 않았냐며 모순을 지적했지만 나머지 대부분 매체들은 여야 충돌을 중계만 했죠. 누가 화냈다, 누가 무슨 말을 했고, 누가 언제 사과할까 흥미진진. 이런 기사 넘쳐 났습니다. 사람이 죽고 나서 그 누구에게도 욕 먹지 않을 도덕적 판관이 되어서 처우 개선을 말하는 건 쉽습니다. 그런데 처우 개선을 뭘로 하나요? 돈으로 합니다. 소방관 처우 개선이 며칠 ..
안녕하세요, 김어준입니다. 한반도 전술핵 재배치를 위해 방미했던 보수 여당 의원들이 지난 토요일 귀국했습니다. 미 국무부는 핵우산으로 충분하다며 전술핵 재배치에 반대하는 공식 입장을 밝혔고, 미 의원들 역시 부정적인 의견을 표명했다고 합니다. 야당이 자신들의 요구를 미국에 직접 전달하는 외교적 노력은 그 자체로 평가받을 일이죠. 우리끼리만 떠들 게 아니라 그렇게 직접 만나야 합니다. 야당은 전술핵 재배치를 반대했던 문재인 정부에 대해 어이없는 안보관, 안보 무능, 안보 포기, 김정은의 기쁨조라고 연일 맹비난 해왔습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럼 전술핵 재배치를 반대하는 미 정부에 대해서도 온갖 표현을 동원해 비판해야 앞뒤가 맞는 거 아닙니까? 전술핵 소유 당사자가 미국입니다. 전술핵 내놓으라고 떼를 쓸 ..
안녕하세요, 김어준입니다. 국정원의 심리전단이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를 작성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해당 문화예술인들의 이미지를 실추시키기 위해 공작을 벌인 것이 밝혀졌습니다. 배우 김성근문성근, 김여진 씨의 나체 사진을 합성해 부적절한 관계, 육체 관계 등의 문구를 넣어 인터넷에 유포한 겁니다. 일국의 최고 정보기관이 사람의 수치심을 가장 적나라하게 자극하는 방식으로 민간인들을 공격한 거죠. 누가 했는지도 알 수 없고, 그 출처도 알 수 없어서 당하는 민간인들로서는 저항할 방법조차 찾을 길이 없었죠. 그런데 국정원이 아무도 시키지 않은 일을 그냥 심심해서 했나요? 국정원이 이런 일을 한 목적은 자명합니다. 보수 정권에 비판적인 인사들을 사회 경제적으로 매장시키기 위해서 한 거죠. 제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
안녕하세요, 김어준입니다. 2017년 9월 13일 국회 경제분야 대정부질문 중 이채익 자유한국당 의원: 이 에너지는 백년지대계인데, 5년 정권이 마음대로 해도 다음 정권이 여러가지 어려움을 겪어도 아무 문제 없겠다 그죠? 신고리 몇 호기는 김대중 정부에서 전원 개발 계획을 수립하고,노무현 정부에서 부지 매입을 했는데, 인정합니까? 이낙연 총리: 네, 그리고 구체적인 계획은 이명박 정부의 전력수급 기본계획에 의한. 이채익 자유한국당 의원: 아니, 그 부지 매입을 노무현 정부에서 한 것을 인정합니까? 이낙연 총리: 그러니까요, 그런 바탕 위에서 이명박 정부가 최종 계획을 전력수급 기본계획에 반영한 겁니다. 이채익 자유한국당 의원: 노무현 대통령이! 이낙연 총리: 그걸 인정하잖습니까. 이채익 자유한국당 의원:..
안녕하세요, 김어준입니다. 지난 2010년 개그우먼 김미화 씨는 KBS에 블랙리스트가 존재한다고 했다가 KBS에 의해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를 당했죠. KBS는 '블랙리스트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법적으로 증명받기 위해 고소를 제기한다'고 했었습니다. KBS는 또 '누가 어떤 의도로 블랙리스트를 거론하고 이용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행위를 당장 멈추라, 방송의 공정성과 독립성을 말하면서 그것을 지키는 근간인 방송법의 정당성을 침해하고 방송에 개입하려는 것은 그야말로 자기당착적 행위'라고 주장했었습니다. 그러니 있지도 않은 블랙리스트를 거론하는 것은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방송에 개입하는 것이라고 오히려 호통을 쳤던 거죠 얼마나 그럴듯한 논리입니까? 이런 논리를 구사한 사람들 배움은 전혀 부족하지 않은 사람..
안녕하세요, 김어준입니다. '최저임금 인상을 통한 내수진작, 사회 안전망 확충, 성 격차 해소, 여성 참여 증진, 포용적 성장.' 진보 학자나 노조가 아니라 방한한 라가르드(Lagarde) IMF 총재가 어제 기자회견에서 쏟아낸 말들입니다. 부자가 된 선진국들이 자기들 이익을 위해서 잘 살아보겠다고 바둥거리는 개발도상국(개도국)을 상대로 신자유주의를 밀어붙이고 다국적 기업의 이익을 대변해서 세계무역기구, 세계은행과 더불어 소위 '사악한 삼총사' 중 하나로 불리는 게 바로 IMF죠. 그러한 IMF가 이제는 소득주도성장을 이야기합니다. 부자들의 모임이라 불리는 다보스 포럼에서도 소득 불평등이 중심 화두가 된 게 몇 년 전입니다.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 가장 소득이 불평등하게 분배된 나라 톱5에 들어가죠. 사..
안녕하세요, 김어준입니다. 프레퍼족(Preppers)이라는 게 있습니다. 냉전을 거치며 인류 멸망에 대비하는 생존주의자(survivalists)들을 일컫는 말인데요, 이들이 처음 등장한 미국에서는 나름의 용어와 관련 산업도 존재합니다. 이들이 쓰는 용어 중에 버그아웃백(bug out bag)이라는 게 있습니다. 대재앙이 닥칠 경우 안전을 도모할 수 있는 장소, 주로 사람이 살지 않는 장소에 은밀히 축적해 둔 비상 식량과 발전기 따위가 준비된 그런 장소까지 이동하는 동안 필요한 배낭을 일컫는 말입니다. '생존배낭'이라는 말은 여기서 유래하는 겁니다. 72시간 동안 생존을 도와주는 최소한의 비상배낭. 지난 주 갑자기 이 생존배낭 기사가 쏟아졌죠. 북핵 위기로 생존배낭에 대한 관심이 크게 늘었다는 겁니다. 그..
안녕하세요, 김어준입니다. 서울시가 가구 소득과 미취업 기간 등을 기준으로 청년들 구직 활동을 지원하겠다며 월 50만원 한도로 지급하는 청년수당 클린카드라는 게 있습니다. 이 카드로 노래방, 소주방, 영화관 등도 이용 가능하다며 보수 진영에서는 진작부터 문제 삼아왔습니다. 지난 달에는 구체적으로 용처 제한의 항목까지 제시했었습니다. 학원 수강료, 시험 응시료 등으로 제한해야 한다는 거죠. 이런 이슈가 있으면 보수 매체는 이 카드로 모텔까지 결제 가능하다며 제목을 뽑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가구 소득이 낮은, 미취업 기간이 길어진 청년들이 취업이 늦어져 형편도 어렵고 스트레스 받다가 소주도 한 잔 하고, 영화도 한 편 보고, 그리고 연인과 사랑도 할 수 있어야 그게 최소한의 사람답게 사는 꼴인 거죠. 미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