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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향한 아주 오래된 길
안녕하세요, 김어준입니다. 지난 주말에 임신중단 합법화, 그러니까 낙태 합법화를 주장하는 집회가 있었습니다. 현행법은 여성과 의료인 모두를 처벌합니다. 그 주장은 간단합니다. '임신, 출산, 육아를 국가가 대신 해주지 않는데, 국가가 이 문제에 개입하는 것은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여성이 본인 만의 사유로 임신 중단을 원해도 처벌하는 건 임신한 이상 출산하라고 국가가 강제하는 거죠. 임신한 이상 출산까지 강제하려면 적어도 그 육아는 국가가 책임져줘야 하는 거 아닌가? 그 삶을 따로 관리해 줄 것도 아니면서 출산과 생명의 신성함만 강조하는 게 오히려 무책임한 거 아닌가? 세계보건기구가 임신중절을 여성의 기본권으로 보는 건 그래서입니다. 물론 앞으로 사회적 공론의 장에서 논의 되어야 할..
안녕하세요, 김어준입니다. 지난 주 아일랜드에서는 인도 뭄바이 태생 이민자의 아들 버라드커(Varadkar)가 인도인 2세로는 최초로 총리가 됐습니다. 서른 여덟. 역대 최연소 총리면서 게이입니다. 세르비아에서는 지난 주 차기총리로 브르나비치(Brnabić)가 지명됐고, 레즈비언입니다. 스페인 여성 국방장관 차콘(Chacón)이 임신한 채 군사사열을 한 게 벌써 10년 전이고, 이제 NATO 회의에서는 여성 국방장관만 서너 명씩 모입니다. 그 나라들은 소수자의 인권이 원래 높았다? 아닙니다. 아일랜드인 아무에게나 물어보세요. 천주교가 사실상 국교인 나라에서 게이 총리를 몇 년 전까지 상상이나 했냐고 세르비아는 국민 85%가 동방 정교회입니다. 스페인은 마초이즘으로 유명하죠. 세상에 원래 그런 건 아무 것..
안녕하세요, 김어준입니다. 한 국내 매체가 일본 아사히신문을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이 사드 보고를 받고 한국이 은혜를 모른다고 격노했다'고 전했습니다. 이 뉴스는 수많은 국내 매체가 받아 썼는데요, 미국 주요 매체를 찾아봤습니다. 관련 기사는 없습니다. 문정인 특보 관련 기사 자체가 없습니다. 해서 아사히 신문을 찾아봤더니 관련 기사 하나 있습니다. 그런데 당연히 워싱턴발 기사인 줄 알았더니 한국발 기사였습니다. 그러니까 한국에 와있는 일본 특파원이 한국에서 한국 내 이야기를 듣고 워싱턴 기사를 쓴 겁니다. 그걸 다시 우리 언론이 일본 언론이 그랬다더라 보도한 겁니다. 국내발 기사가 일본 갔다가 다시 한국에서 외신으로 재인용되고, 그렇게 이 뉴스가 마치 국제적 이슈로 확인된 것처럼 외신의 껍데기를 쓰고 ..
안녕하세요, 김어준입니다. 문정인 특보 발언으로 파장이 크다고 보도하는 언론들은 그 근거로 미국 정가 발언들을 거론했습니다. 예를 들면, 전략국제연구센터(CSIS)의 마이클 그린 부소장이 환경영향평가를 해야 한다는 발언에 대해 '한국은 사드 배치를 위해 법적 절차를 서둘러야 한다'고 했다는 말을 들면서 큰일 났다는 식으로 보도를 했습니다. 자유한국당과 청와대의 정치 논평은 남극과 북극 만큼 거리가 멉니다. 언론이라면 그 발언 당사자의 정치 성향, 한반도 문제에 대한 인식이 어떤지 그것부터 따지고 소개를 해야죠. CSIS는 군사외교 분야 싱크탱크로 그 친일본적 성향이 잘 알려져 있죠. 부소장인 마이클 그린은 일본어에 능통한 대표적 친일 전문가로 아베 정부가 표방하는 강경대북정책과 그 인식의 결을 같이 하는..
안녕하세요, 김어준입니다. '사드가 깨지면 동맹이 깨진다고 하는데 무기 체계 중 하나에 불과한 사드 때문에 동맹이 깨진다면 이게 동맹인가?' 문정인 특보의 이 발언을 TV조선은 막말이라고 보도했습니다. 왜 이런 말도 못하나요? 환경영향평가에 4개월 걸린다니까 북한이 미사일 쏘는 엄중한 시국에 그럴 시간이 어딨냐고 합니다. 사드를 내일 배치하면 북한이 내일부터 미사일을 안 쏘나요? 미국은 괌에 사드를 배치할 때 7년이나 논의를 했습니다. 환경영향평가는 23개월이 걸렸습니다. 미국이 자국 땅에 배치할 때는 하는데 왜 우리는 안 합니까? 사드 관련해 조금만 다른 입장을 보이면 '미국이 화 낸다, 기분 나빠한다' 미국 당국자가 할 소리를 왜 우리 정치권이 먼저 대신 하는지요? '냉혹한 국제 정치에 자존심이 중요..
안녕하세요, 김어준입니다. 지드래곤의 권지용 씨가 USB에 음악 파일이 아니라 파일을 다운로드 할 수 있는 링크만 담아 발매를 했고, 한국음악콘텐츠산업협회는 음원이 담기지 않아 음원이 아니라며 음반 판매량에서 제외해서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출판업계는 전자책이 나오자 전자책 통계를 따로 내는 것으로 해결한 적이 있는데, 이 경우는 전자책과도 다릅니다. USB에 전자책의 내용이 아니라 전자책의 링크만 담긴 것을 과연 서적으로 볼 것인가? 이런 문제죠. USB에 파일이라도 담겨야 한다는 협회의 판단과 음반의 정의를 왜 독점하느냐는 가수의 항변이 맞서는 겁니다. 최초 음반이 탄생한 것이 100년 남짓에 불과합니다. 무엇이 무엇이다 하는 정의와 기준은 변하기 마련이죠. 가수의 항변이 일리 있는 건 그래서입니다...
안녕하세요, 김어준입니다. 서울대학병원이 고(故) 백남기 씨 사망진단서에 사망 종류를 병사에서 외인사로 수정했습니다. 서울대는 의사 개인의 판단과 의사 집단의 판단이 다를 경우 어떻게 조율해야 할 지 고민했다고 합니다. 사망진단서를 수정하는 일은 개원 이래 최초의 사례라 어떤 절차를 거칠 지도 긴 논의를 거쳐야 했다고 하구요. 평생 한 분야를 전공한 전문가가 자신의 소신 아래 결정을 내렸고, 그것이 다른 전문가들의 견해와 다를 경우 어떻게 할 것인가? 만약 고(故) 백남기 씨 사건이 바로 그런 경우라면 설사 다른 전문가들과 이견이 있다 해도 그 전문가의 소신과 견해는 존중 받아야 하죠. 그런데 백남기 씨 사건이 정말 그런 경우인가? 세월호가 정부의 책임이 아니어야 한다며 해경 123정 정장에 대한 업무상..
안녕하세요, 김어준입니다. 추경 예산에 대해 야당은 추경 요건이 되지 않는다며 반대합니다. 요건이 안 된다는 건 전쟁 재해, 경기 침체, 대량 실업, 남북 관계 등의 중대 변화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가장 시급한 현안을 '실업'으로 규정하고 이를 국가 중대 위기라고 여겨 추경 요건이라고 판단하는 현 정부의 자구 해석에 '그 해석은 틀렸다'고 동의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렇게 따지면 박근혜 정부 시절 모든 추경은 단 한 번도 요건이 안 됐습니다. 심지어 브렉시트를 명분으로 했지만 실제 브렉시트와 관련해 그 돈을 쓴 적도 없었죠. 그러면 요건 문제로 추경이 되지 않았던 적이 단 한 번이라도 있었던가? 없었습니다. 더구나 이번 추경은 국채 발행하는 것도 아니고, 10조 이상의 추가 세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