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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향한 아주 오래된 길
안녕하세요, 김어준입니다. 어제 괴비행체가 군사분계선을 넘나들었다고 합니다. 지난 10여 년간 북한 소식은 모두 부정적인 뉴스였습니다. 세계 유일 분단국가가 통일되어야 한다는 생각 그 자체가 과거보다 많이 약해졌습니다. 이제 각자 체제 유지하며 이 상태를 그냥 유지해야 한다 하는 말들도 많이 합니다.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파리, 북경, 서울. 물리적으로 다 같은 땅 위에 있죠. 서울에서 파리까지 운전해 가는 게 가능은 합니다. 하지만 우리 머릿 속에서는 그 땅은 끊어져 있습니다. 머릿 속에서 땅이 끊어진 덕분에 우리 머릿 속에서 세계는 우리와 떨어져 있고, 세계는 저 멀리 바깥에 있죠. 그렇게 나와 세계는 연결돼 있지 않습니다. 물리적 조건은 정신을 한계 짓습니다. 태평양 섬 원주민들이 처음 보는 백인..
안녕하세요, 김어준입니다. 오늘은 노무현 8주기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싫어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그분들은 여전히 그 죽음을 애달파하는 사람들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럴 수 있죠. 이해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8주기 되는 날이니 그렇게 슬퍼하는 사람들을 한 번쯤 이해해보려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겁니다. 그건 이런 겁니다. 그 사람들에게 노무현은 내가 어린 시절 배운 아주 단순하고 순진한 정의, 우리 편은 이기고 나쁜 놈은 진다는 수준의 나는 나이 먹어가며 반드시 그런 건 아니라는 걸 어쩔 수 없이 받아들였지만 그래도 여전히 그런 게 있다고 믿고 싶은 그런 정의의 원형질이 사람으로 체화된 상징입니다. 그래서 노무현의 죽음은 아직도 내 안의 어딘가에서 살아있던, 그런 단순한 정의를 믿고 ..
안녕하세요, 김어준입니다. '2017년 5월 15일 주가는 1000 밑으로 주저 앉고, 원화는 달러당 2000을 훌쩍 넘고 사람들은 대북폭격설 때문에 생수, 라면 사재기를 한다. 트럼프는 어떤 식으로든 북한을 때린다. 문재인이 되면 통보 없이 때리고, 안철수가 되면 통보하고 때리고, 홍준표가 되면 상의하고 때린다. 그리고 취임 1주일이 지나도록 트럼프 축하전화는 없다.' 지난 4월 13일 한 언론사 칼럼 내용입니다. 문재인 당선시 한반도에 닥칠 위기를 가상으로 그리며 이번 선거에 국가 존망이 걸려 있으니 투표 잘하자는 내용입니다. 한마디로 문재인은 안 된다는 거죠. 실제 벌어진 일은 우리 모두 알고 있습니다. 지난 주 홍석현 대미특사가 만난 미 틸러슨 국무장관은 대북 군사행동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죠...
♬ 임을 위한 행진곡 ♬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 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데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 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안녕하세요, 김어준입니다. 어제 5.18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이 제창됐습니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 하에서 합창만 허용되고 제창이 금지됐었죠. 가사 중에 '임'은 김일성이고 '새 날'은 사회주의 혁명을 의미한다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실제 이 노래는 5.18 2주기 때 5.18 당시 전남도청에서 계엄군의 총에 숨진 윤상원 씨와 공단의 야학강사로 불의의 사고로 사망한 박기순 씨의 영혼결혼식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겁니다. 북한에선 ..
안녕하세요, 김어준입니다. 김상조 교수가 공정거래위원장에 내정되었습니다. 이런 날이 오긴 오는군요. 김상조 교수가 재벌개혁을 주장한 세월 참 깁니다. 하지만 그동안 그 주장은 그저 이론으로만 취급됐습니다. 그 주장이 합리적이지 않아서가 아니라 재벌의 힘은 김상조 주장 정도는 아주 간단하게 무력화시킬 만큼 아주 막강했습니다. 재벌들은 그동안 너무 힘이 셌죠. 힘이 센 게 무슨 죄냐. 죄가 됩니다. 그 힘은 정치와 거래하고 결탁한 댓가로 얻은 것이었으니까요. 일반 국민들은 재벌들 다 해체하고, 회장들 다 구속하고, 재산 다 환수하고, 그러길 바라는 게 아니죠. 한 마디로 조금 더 공정하길 바라는 겁니다. 그래서 재벌들이 다 먹고, 그 나머지 찌꺼기를 조금 나눠주는 것을 그걸 경제라고 부르는 불공정한 우리 사..
안녕하세요, 김어준입니다. '포스트트루스(post-truth)'라는 말이 있죠. 정보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각자 나름의 세계관으로 그 정보를 재구성 해 자신만의 진실을 따로 구축하는 시대. 그런 정도의 의미입니다. 가짜뉴스가 그 첫 번째 징후였죠. 정보에서 맥락을 무시하고 단편적인 데이터를 편집해서 자기들만의 가짜진실을 별도로 만드는 거죠. 인터넷, 그리고 모바일과 함께 도래한 이 세계적인 트렌드는 그러나 가짜뉴스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전통 미디어의 뉴스를 더이상 신뢰하지 않고 스스로 인터넷을 검색해서 사실 관계를 검증하고 그 정합성을 따져서 그 뉴스를 보완, 반박 때로 대체하는 사설 뉴스가 만들어지고, 그 사설 뉴스가 공감대를 담보할 때는 '다중'과 만나 거대한 유통과 공유가 시작됩니다. 그렇게 사..
안녕하세요, 김어준입니다.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기간제 교사 2인의 순직이 인정 받게 됐습니다. 학생들을 구하러 선실로 들어갔다가 희생됐는데도 비정규직이란 이유로 규정상 순직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 박근혜 정부의 입장이었습니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의 지시에 인사혁신처는 공무원 연금법 시행령을 개정하거나 또는 개정하지 않고도 처장이 희생된 두 분을 대상자로 지정하는 것만으로도 순직 인정이 가능하다 했습니다. 이렇게 간단했던 겁니다. 그러니까 그동안 지정을 못했던 게 아니라 안 했던 거죠. 박근혜 정부는 대체 왜 그랬을까요? 아이들을 구하다 희생된 사람들에게조차 왜 그렇게 야박하게 굴었을까요? 어떤 경우에도 규정은 예외 없어야 하고, 어떤 경우에도 특혜는 없어야 한다고 생각한 걸까요? 그러면 기소조차 되..
안녕하세요, 김어준입니다. 안토니오 네그리(Antonio Negri)라는 정치철학자가 있습니다. 그는 '다중(multitude)'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는데, 국민이나 대중으로는 설명할 수 없고 나이, 지역, 직업, 성별 등 기존의 기준으로는 분류할 수 없는 불특정 다수로 이들은 단일한 지도부를 가지지 않고 물질이 아닌 가치를 생산하고 공유하는 개방, 수평, 참여, 분산 네트워크다. 이 다중이 우리 현대사에서 가장 구체적인 형태로 드러난 것이 촛불시위입니다. 기존의 정치가 촛불에서 지도부와 배후와 내막을 찾으려고 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었죠. 정보를 공유하며 스스로 학습하고 다시 자신이 자발적인 유포자가 되는 이 거대한 선순환 네트워크는 자기들만의 아젠다로 기획을 하고 프레임을 구축해 대중을 자신들이 원하는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