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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향한 아주 오래된 길
안녕하세요, 김어준입니다. 최근 진보매체들이 수난을 겪고 있습니다. 뜯어보면 의도 없는 단순 실수도 있고, 아주 억울한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현상은 사실 관계를 소상히 밝히는 정도로는 정리가 되지 않습니다. 노무현 대통령 서거에 진보매체가 조력자 역할을 했고, 지지자들은 방조자였다는 트라우마가 그 바탕이라고도 하고 그 외 많은 분석들이 있습니다. 그런 면들 있을 겁니다. 저는 조금 다른 측면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우리 사회의 진보매체는 독재와 군사정권의 부역하던 어용언론을 비판하며 탄생했습니다. 당시는 부당한 정권을 견제하는 것만으로 기자의 안위가 위협받는 시대였고, 정권에 비판의 날을 세우는 것만으로도 박수받아 마땅한 기자정신의 구현이었습니다. 우리 진보매체의 직업 윤리와 소명 의식은 바로 그..
안녕하세요, 김어준입니다. 네 개의 사드 발사대의 존재를 청와대 보고에서 군이 누락시킨 사건을 처음 보도할 때 일부 언론에서는 진실공방이라는 프레임으로 접근했습니다. 서로 다른 주장이 있는데 아직 누구 말이 맞는지 확정된 게 아니니 진실공방이라는 거죠. 형식 논리로는 틀린 말도 아닙니다. 이런 형식 논리는 여야, 진보-보수처럼 입장이 첨예하게 갈리는 양 당사자가 맞설 때 흔히 등장합니다. 어느 한 쪽 편들지 않으면서 양 주장을 모두 전달하는 기계적 균형으로 언론은 어느 일방의 원망이나 비난으로부터 안전해지는 거죠. 이런 방식이 가지는 미덕이 있습니다. 양자 주장 모두를 병렬 나열하고 그 판단은 독자에게, 유권자에게 맡기는 것이 더 공정한 경우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워싱턴타임즈가 미 대선에서 어느 일방, ..
안녕하세요, 김어준입니다. 지난 주 NATO G7 정상회담 후 독일의 메르켈 총리는 대단히 의미심장한 발언을 했습니다. "다른 누군가에 의지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난 것 같다. 유럽인의 운명은 우리 손으로 챙겨야 한다. 미국과 관계를 지속하면서 러시아와도 더 좋은 이웃으로 지내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NATO 유럽회원국의 방위비 분담금 인상을 요구하고 파리기후협약에도 부정적 태도를 보인 직후에 나온 말입니다. 세계 2차 대전 이후 러시아와 적대했던 서유럽은 미국과 독일의 동맹을 축으로 거대 군사력의 러시아를 견제해왔습니다. 그러나 이제 트럼프식 미국우선주의가 대서양 양쪽의 군사 외교 관계를 재편하고 있는 겁니다. 메르켈의 반응은 고스란히 우리의 사정이 될 수도 있습니다. '다른 누군가에 의지할 수 있는..
안녕하세요, 김어준입니다. 소위 '문자폭탄'이라 불리는 문자 항의에 대해 고소, 고발 이야기가 정치권에서 나옵니다. 작년 촛불부터 탄핵, 파면, 대선을 거치는 7개월여 기간은 시민들이 자신의 정치적 권리를 확인해가는 과정이기도 했습니다. 우리 케이스 이전에 어떤 폭력 행위도 없이 합법적으로 정권과 그 지지기반을 근본부터 무너뜨린 사례는 지난 100여 년간 1989년 체코슬로바키아의 벨벳혁명이 유일했습니다. 벨벳혁명은 구소련 몰락이라는 선행사건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우리 사례가 지난 100여 년간 사실상 유일한 경우입니다. 이 과정을 겪으며 시민들은 때로 촛불을 들고, 때로 글을 쓰고 전파하고 공유하며 자신의 정치적 권리를 쓰는 법 또한 스스로 학습했습니다. 문자 항의 역시 그렇게 스스로..
안녕하세요, 김어준입니다. 정의당 김종대 의원이 군형법 개정안을 발의했습니다. 92조 6항 동성애 관련 조항 때문입니다. 현행 군형법은 영내가 아니라 사적 공간에서 합의된 관계도 처벌합니다. 김 의원은 이를 성적 자기결정권과 사생활 자유의 침해라고 지적합니다. UN에서도 이 조항은 이미 두 차례 폐지 권고를 한 바 있죠. 그런데 이 개정안 때문에 김 의원 사무실은 엄청난 항의를 받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는 흔히 '동성애자를 반대한다'는 표현을 씁니다. 이 표현이 왜 문제가 되느냐? 존재를 반대할 수는 없는 거죠. 빨간색을 반대한다. 말이 안 되죠. 마찬가지 이유로 흑인을 반대할 수 없습니다. 흑인을 싫어한다는 표현만 가능한 거죠. 생각해 보면 실제로는 그렇게 싫어하는 걸 반대한다고 표현하는 겁니다. 왜 ..
안녕하세요, 김어준입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한 학생의 편지에 옥중에서 이렇게 답장을 보냈다고 합니다. MB 옥중서신 "뜻밖의 편지를 받고 반가웠습니다. 격려의 글을 받고 고마웠습니다. 나 자신 부족한 점이 많지만 평생 열심히 정직하게 살아왔다고, 정직하게 살아왔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한 주 가장 눈에 띄는 기사였습니다. 평생 정직하게 살아왔다. 이명박 전 대통령 이 편지를 쓸 때 아마 이런 마음이 아니었을까. ♬ 서시 - 윤동주 (낭독: 윤형주) ♬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이렇게 맑고 흔들림 없는 이명박 전 대통령을 보며 저는 그런 생각을 합니다. 이 정도면 경배의 대상이다. ♬ 어..
안녕하세요, 김어준입니다. 오늘부로 미일중러 4개국 특사들이 모두 귀국했습니다. 이들 4개국 관련해서는 4개국 모두 관련됐을 뿐만 아니라 국내 정치적으로도 정당별 입장이 갈리는 사드배치 문제가 향후 가장 민감한 이슈 중 하나가 될 겁니다. 과연 이 무기의 성능은 미군이 그리고 박근혜 정부 하의 국방부가 주장하듯 그렇게 뛰어난 게 맞긴 맞는지부터 비용 문제는 어떻게 해결하고, 국회 비준은 어떻게 할 것이며, 중국과의 군사외교적 긴장고조와 경제적 손실을 감수할 만큼 안보 이득이 과연 있는 건지까지 여러 검토가 필요할 겁니다. 저는 이 문제 자체보다 국민들이 이 무기 도입으로 인해 우리가 어떤 이득을 얻고 대신 어떤 댓가를 지불해야 하는지 정확하게 아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런 판단의 근거가 충분히..
안녕하세요, 김어준입니다. 그저께 군사분계선을 넘나들어 군이 기관총 사격을 가했던 괴비행체는 풍선으로 밝혀졌습니다. 어제는 외교안보특보 내정자인 문정인 교수가 5,24조치, 그러니까 천안함 이후 방북 불허, 교역 중단 등 전면적인 대북 제재를 이제는 전향적으로 풀어가야 한다는 발언으로 보수 진영의 집중 공격을 받았습니다. 지난 10년간 보수 정권 하에서 북한 뉴스는 항상 부정적이었고, 지금도 풍선에 기관총을 쏠 정도입니다. 북한은 한반도에서 가장 큰 불확실성이죠. 인간은 불확실성을 두려워합니다. 원시인류 때부터 수풀 속에서 뭐가 튀어나올지 모르면 두려워했습니다. 본성이죠. 이 두려움의 감정을 가장 손쉽게 처리하는 방식이 그 불확실성을 악으로 규정하는 겁니다. 공포스러운 대상을 윤리적 단죄의 대상으로 바꾸..